갤럭시 XR: 애플 비전 프로의 반값, 그러나 경험은 그 이상
지난 몇 년간 프리미엄 XR(확장 현실) 시장은 조용한 기대감 속에서 숨죽여 왔습니다. Meta는 Quest 시리즈로 '모두를 위한 VR 게이밍' 시장을 개척했고, Apple은 500만 원이 넘는 Apple Vision Pro(애플 비전 프로)로 '공간 컴퓨터'라는 럭셔리한 미래를 제시했습니다. Vision Pro는 경이로운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그 가격과 폐쇄적인 생태계로 인해 '개발자 킷' 혹은 '부유한 얼리어답터의 장난감'이라는 인식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제, 마침내 '잠자는 거인'이 움직였습니다. 삼성이 구글, 퀄컴과 손잡고 '프로젝트 무한(Muhan)'이라는 이름으로 개발해 온 갤럭시 XR(Galaxy XR)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Apple의 절반 가격인 약 269만 원에 출시된 이 기기는 단순히 Vision Pro의 저렴한 대안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절대 아닙니다. 갤럭시 XR은 Vision Pro와는 완전히 다른 철학으로 만들어진 제품입니다. Apple이 아름다운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을 만들었다면, 삼성은 '지능형 AI'와 '개방성'이라는 두 개의 강력한 엔진을 장착한 허브를 구축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경쟁 제품이 아니라, 시장의 룰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입니다.
1. 첫인상: XR 기기의 편안함 방정식을 (거의) 풀다
XR 기기의 가장 큰 적은 기술이 아니라 '무게'와 '착용감'입니다. Vision Pro는 600g이 넘는 무게가 앞으로 쏠리며 사용자의 광대와 뺨을 짓누르는 '치크 크러셔(Cheek-Crusher)' 디자인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무게와 균형의 승리
갤럭시 XR은 540g대의 상대적으로 가벼운 본체 무게를 자랑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무게 배분입니다. Vision Pro의 부드러운 '솔로 니트 밴드' 대신, 갤럭시 XR은 후면에 다이얼이 달린 단단한 '하드 스트랩'을 채택했습니다. 메타 퀘스트 프로와 유사한 이 방식은 무게를 이마와 뒤통수로 효과적으로 분산시켜, 많은 리뷰어들이 "Vision Pro보다 압도적으로 편안하다", "엄청 안정적이다"라고 평가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습니다. 특히 뒤통수를 넓게 받쳐주는 원형 받침대는 호평 일색이었습니다.
새로운 문제, '이마 압박'
하지만 이 방식이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뺨의 압박을 피한 대신, 무게가 이마 쿠션으로 집중됩니다. 일부 리뷰어들은 30분에서 1시간 정도 착용했을 때 이마에 상당한 압박감과 통증을 느꼈다고 보고합니다.
한 리뷰어는 "전혀 아프지 않다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단언하기도 했고, 또 다른 리뷰어는 1시간 정도가 고통의 임계점이며 그 이후로는 오히려 고통에 "익숙해진다"고 표현했습니다. 이는 사용자의 두상과 민감도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부분입니다.
개방형과 몰입형의 공존
기본적으로 갤럭시 XR은 Meta Quest Pro처럼 하단이 개방된 '오픈형' 디자인을 채택했습니다. 이는 답답함을 줄여주지만 몰입감을 해칠 수 있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자석으로 쉽게 탈부착이 가능한 '빛가리개(Light Shield)'를 제공합니다. 다른 기기들의 빛샘 문제보다 훨씬 개선된 방식으로, 사용자가 원할 때 언제든 완전한 몰입형 VR 기기로 전환할 수 있게 했습니다.
2. 시각 경험: 4K 거인들의 격돌, 미묘한 차이
갤럭시 XR은 양안에 4K 마이크로 OLED 디스플레이라는 현존 최고 수준의 패널을 탑재했습니다. OLED의 명확한 장점인 완벽한 블랙 표현과 생생한 색감(P3 95%)은 그 자체로 감탄을 자아냅니다. 해상도만 보면 비전 프로보다도 높습니다.
패스스루: '충분히 좋은' 현실, 그러나 최고는 아니다
외부 카메라를 통해 현실을 보는 '패스스루' 기능은 Quest 3보다는 확실히 뛰어나며 매우 선명합니다. 스마트폰의 글자를 읽는 데 무리가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Vision Pro와 일대일로 비교하면, 약간의 노이즈와 기기를 움직일 때 느껴지는 모션 블러(잔상)가 더 존재한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Vision Pro의 패스스루가 '내가 지금 무언가를 쓰고 있나?' 잊게 만들 정도의 경지라면, 갤럭시 XR은 '매우 훌륭한 고화질 카메라를 통해 현실을 보는' 느낌을 줍니다. 일부 리뷰어는 Vision Pro 대비 더 밝지만 "보정된 카메라 화면"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시야각과 광학계의 아쉬움
시야각(FOV) 측면에서는 Vision Pro보다 우수하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특히 상하 시야각이 더 넓어 아이돌 공연 영상 등을 감상할 때 공간감이 뛰어나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몇몇 리뷰어들은 아쉬운 점으로 렌즈의 초점이 완벽하게 맞는 영역, 즉 '스위트 스팟(Sweet Spot)'이 Quest 3나 Vision Pro보다 다소 좁게 느껴진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자동 IPD(동공 간 거리) 조절 기능이 실제 눈 간격보다 약간 넓게 설정되는 경향이 있어, 일부 사용자에게는 두 렌즈가 만나는 중앙부에 미세한 검은색 경계나 줄이 느껴져 완벽한 일체감을 방해한다는 보고도 있었습니다. 이는 최고급 디스플레이를 탑재했지만, 광학계의 최종 튜닝에서는 Vision Pro가 한 수 위일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또한, 화면 스크롤 시 약간의 끊김(주사율 문제)이 느껴진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3. '제미나이 XR': 삼성의 진정한 비장의 무기
많은 리뷰어들이 이 기기를 '갤럭시 XR'이 아니라 '제미나이(Gemini) XR'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그 이유는 이 기기의 핵심 경쟁력이 하드웨어가 아닌, 깊숙이 통합된 구글의 AI '제미나이'에 있기 때문입니다. "AI가 깡패 수준"이라는 극찬이 나올 정도입니다.
단순한 음성 비서가 아닌 'AI 동반자'
Vision Pro의 '시리(Siri)'는 사용자가 무엇을 보는지, 어떤 앱을 켰는지 알지 못하는 '눈 감은' 비서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갤럭시 XR의 제미나이는 '멀티모달(Multimodal)' AI입니다. 사용자의 음성 명령을 들을 뿐만 아니라, 패스스루 카메라를 통해 *사용자가 보는 현실*과 *실행 중인 앱*까지 함께 보고 이해합니다.
컨텍스트가 모든 것이다
이 차이는 엄청난 사용자 경험의 격차를 만듭니다.
- ✓ 현실 기반 검색: 패스스루 모드에서 현실의 물건(예: 신발)을 보며 '서클 투 서치(Circle to Search)' 제스처를 취하면, 제미나이가 즉시 그 신발이 무엇인지 검색해 줍니다.
- ✓ 앱 연동 지능: 구글 맵을 띄워놓고 "이 근처 맛있는 피자집 찾아줘"라고 말하면, 제미나이가 지도 앱과 연동하여 결과를 보여주고 안내까지 해줍니다.
- ✓ 시스템 제어: 여러 개의 창이 어지럽게 띄워져 있을 때, "창을 전부 정리해 줘"라고 말하면 AI가 알아서 창들을 보기 좋게 정렬합니다. (단, 창을 닫는 명령은 아직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 ✓ 실시간 도움: PC 링크로 게임을 하다가 막히는 부분에서 "이 게임 어떻게 하는 거야?"라고 물으면, 제미나이가 현재 실행 중인 게임을 인지하고 공략법을 알려줍니다.
Vision Pro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 유기적인 AI 연동은, 갤럭시 XR을 '정보를 소비하는 기기'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작업을 보조하는 기기'로 격상시킵니다. 키보드 없이도 대부분의 작업을 음성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은 생산성 측면에서도 큰 장점입니다.
4. 상호작용의 재정의: 두 세계의 장점을 모두 취하다
Vision Pro는 오직 '시선 추적(Eye-Tracking)'만으로 기기를 조작합니다. 바라보는 곳이 곧 커서가 되고, 손가락을 꼬집어(pinch) 클릭합니다. 이는 마법 같지만, 작고 촘촘한 버튼을 정확히 누르려 할 때는 오히려 스트레스가 될 수 있습니다.
반면, 갤럭시 XR은 시선 추적과 손 포인터 추적(핸드 트래킹)을 완벽하게 결합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이는 "현재 출시된 모든 XR 기기 중 가장 진보하고 직관적인 방식"이라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사용자는 평소에 Vision Pro처럼 눈으로 편하게 대상을 응시하고 손은 아래에 편히 둔 채 핀치 동작만으로 조작하다가, 정확한 컨트롤이 필요한 순간(예: 웹서핑 중 작은 링크 클릭)이 오면 자연스럽게 손을 들어 '레이저 포인터'를 쏠 수 있습니다. 손을 내리면 다시 시선 추적으로 자동 전환됩니다. 이 두 방식이 "물 흐르듯이(flawless)" 끊김 없이 연동되는 경험은 갤럭시 XR만의 강력한 장점입니다. 핸드 트래킹 자체의 정확도도 Quest 3보다는 다소 아쉽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전반적인 조작 경험은 매우 긍정적입니다. 다만, 가상 키보드 입력은 여전히 다소 불편하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5. 개방형 생태계: 안드로이드의 압도적인 승리
Vision Pro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콘텐츠의 부재'입니다. 1년이 다 되어가도록 네이티브 넷플릭스(Netflix) 앱도, 유튜브(YouTube) 앱도 없습니다.
갤럭시 XR은 이 지점에서 상대를 완벽히 KO시킵니다. 이 기기는 구글 플레이 스토어의 거의 모든 안드로이드 앱을 구동할 수 있습니다.
- ✓ 넷플릭스와 유튜브: 당연히 네이티브 앱으로 존재하며, 이는 콘텐츠 소비 측면에서 Vision Pro 대비 "사기 수준"의 우위를 제공합니다. 심지어 넷플릭스는 콘텐츠 '오프라인 저장' 기능까지 지원합니다. 유튜브는 기존 2D 영상도 AI로 3D 공간 영상으로 변환해 주는 기능까지 제공합니다.
- ✓ 풍부한 로컬 앱: 쿠팡 플레이, 네이버 '치지직' 등 국내 사용자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대부분의 앱을 XR 환경에서 그대로 즐길 수 있습니다. 특히 네이버 '치지직 XR' 앱의 아이돌 공연 영상은 높은 품질로 호평받았습니다.
'할 것이 없다'는 Vision Pro의 근본적인 문제 앞에, 갤럭시 XR은 '할 것이 너무 많다'는 행복한 고민을 제시합니다. 퀵쉐어, PC 링크(현재 갤럭시 북 한정), 스마트폰 전화/문자 연동 등 기존 갤럭시 생태계와의 연동성도 뛰어납니다.
6. 이 기기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갤럭시 XR은 모두에게 완벽한 기기일까요? 놀랍게도, 이 제품은 VR 입문자에게는 추천하기 어렵습니다.
입문자가 아닌 'VR 고인물'을 위한 장비
갤럭시 XR의 자체 스토어에 등록된 네이티브 3D 게임은 출시 초기 기준으로 매우 적습니다. VR 게임을 처음 경험하고 싶다면, 방대한 게임 라이브러리를 갖춘 Meta Quest 3가 여전히 압도적으로 현명하고 경제적인 선택입니다.
갤럭시 XR은 오히려 기존 VR 사용자, 즉 'VR 긱(Geek)'과 '파워 유저'들을 위한 꿈의 기기에 가깝습니다.
- 최고의 PC VR 머신: 이 기기는 '버추얼 데스크톱(Virtual Desktop)' 앱과 스팀 VR을 공식 지원합니다. 이는 4K 마이크로 OLED라는 최고급 디스플레이와 Wi-Fi 7 지원을 바탕으로, Half-Life: Alyx와 같은 고사양 PC VR 게임을 무선으로 스트리밍하는 현존 최고의 클라이언트가 될 잠재력을 가졌음을 의미합니다. 컨트롤러의 성능 검증이 남았지만, PC VR 유저들에게는 Vision Pro가 줄 수 없는 핵심 가치입니다.
- 소셜 VR 유저의 '종결템': '갤럭시 아바타' 앱은 정교한 얼굴 및 시선 추적은 물론, 심지어 혀의 움직임까지 일부 추적하는 기능을 선보였습니다. 이는 VRChat 등 소셜 VR 사용자나 버추얼 유튜버들에게는 그토록 바라던 '꿈의 기능'입니다. Quest Pro 외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던 하이엔드 트래킹 시장에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한 것입니다.
7. 결론: 절반의 가격, 그 이상의 가치
갤럭시 XR은 몇 가지 아쉬운 점(이마 압박, 완벽하지 않은 패스스루와 광학계, 핫스왑 미지원 배터리)과 비싼 액세서리 가격(컨트롤러/케이스 각각 33만 원)이라는 장벽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기는 Apple Vision Pro의 '반값' 제품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노선을 선택한 '대항마'입니다. Vision Pro가 아름답지만 폐쇄적인 '미래의 컨셉'을 제시했다면, 갤럭시 XR은 AI와 개방형 생태계를 통해 '지금 당장 강력하고 실용적인' 현실적인 솔루션을 제공합니다.
"최고는 아니지만 대체재가 없다"
Vision Pro가 할 수 없는 수백만 개의 안드로이드 앱을 구동하고, Siri보다 훨씬 유능한 Gemini AI 비서를 탑재했으며, PC VR 게이머들에게 최고의 환경을 약속합니다. 첫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멀쩡하다", "생각보다 괜찮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결국 이 싸움은 단순히 VR 기기 대 VR 기기의 싸움이 아닙니다. 이것은 '폐쇄형 공간 컴퓨터'와 '개방형 지능형 허브'의 대결이며, Apple의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과 Google의 방대한 생태계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새로운 전쟁의 서막입니다. 그리고 삼성은 이 전쟁에서, 소비자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화려한 하드웨어 스펙 너머에 있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임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습니다.














